에세이 #01

짓는 힘

1847년, 컴퓨터도 디젤 엔진도 중앙 계획도 없던 한 나라가 단 1년 만에 깐 철도는 대부분의 나라가 한 세대 동안 놓은 것보다 길었다. 영국은 그해 GDP의 8% 가까이를 철도에 쏟아부었다. 철도망은 10년 사이에 네 배 넘게 늘었는데, 그 가운데 정부가 계획한 구간은 한 곳도 없었다. 노선 하나, 회사 하나마다 민간이 내린 판단이 쌓여 철도망이 되었고, 그 철도망이 나라를 새로 빚어냈다.

그 영국이 지금은 고속철도 한 노선에 17년의 세월과 468억 파운드를 쓰고도 단 1마일도 개통하지 못했다. 힝클리 포인트 C 원전은 비용이 당초 추정치의 두 배를 넘어섰고, 완공은 2030년으로 밀렸다. 영국 산업계가 내는 전기요금은 국제 비교에 흔히 쓰이는 28개국 가운데 가장 비싸다.

두 세기 사이에 영국 사람들이 전혀 다른 사람들로 바뀐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짓는 사람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조건, 곧 에너지와 자본과 허가를 각각 얼마나 얻을 수 있느냐였다.

세 요소. 이것을 짓는 힘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짓는 힘은 세 가지를 곱한 값이다. 제도, 실효 에너지 풍요, 그리고 오늘날에는 자동화를 뜻하는 노동 투입이다.

문명 경쟁력 C ≒ 제도 I × 실효 에너지 풍요 E × 노동 투입(자동화) L

곱셈이므로 한 요소가 0에 가까우면 나머지 둘이 아무리 튼튼해도 전체가 0으로 끌려 내려간다. 세 번째 요소인 노동 투입은 사실 두 가지 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그 나라는 첨단 반도체와 그 제조 장비처럼 없으면 나머지 모든 나라가 멈춰 서고 마는 기술을 쥐고 있는가, 아니면 적어도 손을 뻗어 얻을 수 있는가. 다음으로, 그 나라 안에 국부펀드처럼 차원이 다른 규모의 돈을 한 번의 결정으로 걸 수 있는 주체가 있는가. 내가 말하는 실효 풍요는 실제로 쓸 수 있는 에너지를 가리키며, 어쩌다 보유하게 된 에너지와는 구별된다. 똑같은 매장량이 어느 나라에서는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전력이 되고, 다른 나라에서는 땅속에 그대로 잠들어 있다. 킬로와트시당 가격이 얼마냐보다, 짓는 사람이 수십 년 동안 기가와트 단위의 전력을 끌어 쓰면서도 누구 하나 그 양을 따질 필요가 없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 식은 한 나라가 이미 쌓아 둔 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식이 알려 주는 것은 그 나라가 앞으로 얼마나 더 지을 수 있느냐다. 지금 부유한 나라의 집합과 지금 지을 수 있는 나라의 집합은 서로 다르며, 앞의 집합은 세 요소가 모두 갖춰져 있던 시절에 쌓아 둔 재고로 살아가고 있다.

흔히 놓치는 부분은 결정이 내려지기도 전에 제약이 하는 일이다. 선택지는 저울에 올라 기각되는 단계에 이르지도 못한다. 애초에 누구도 내놓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전제가 고정되어 있다고 다들 아는 곳에서는 아무도 그 전제 위에 사업계획서를 쓰지 않고, 투자위원회에 올라가는 안건도 없으며, 구상 자체가 싹트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현실적이라고 느끼는 사업의 범위도, 투자 규모에 관한 우리의 상식도, 세 요소가 오늘 있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가정 위에서 만들어졌다.

토대란 무엇인가.

Figure 1-1 Energy commanded per person, in human-body equivalents

one mark = 100 watts of continuous power, roughly one human body at rest; each row is 24 marks

Energy commanded per person, watts of continuous power
PeriodWatts per personHuman-body equivalents (100 W each)
Hunter-gatherer3003
World, 19008909
World, 20242,43024
United States, 20248,45084

Twelve thousand years separate the top row from the bottom, and almost all of the difference arrives after 1800. Values before that date are order-of-magnitude estimates.

Source: Smil, Energy and Civilization (2017), and Smil's world series for 1900; Our World in Data (CC BY 4.0) for 2024. The 300 watts is the author's estimate.

한 사람이 부리는 에너지를 사람 몸 몇 개분인지로 나타냈다. 표시 하나는 100와트의 연속 출력으로, 대략 쉬고 있는 사람 몸 하나에 해당한다. 맨 윗줄과 맨 아랫줄 사이에는 1만 2,000년이 놓여 있고, 그 차이는 거의 전부 1800년 이후에 생겼다.

구석기 시대 수렵채집인이 부린 에너지는 불까지 합쳐 대략 300와트였다. 오늘날 1인당 1차 에너지는 세계 평균이 약 2,430와트, 미국이 약 8,450와트다. 미국인 한 사람으로 치면 100와트짜리 몸 84개에 해당한다. 부유한 산업 문명이란 사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인을 100명 가까이 거느리고 사는 문명이다.

1만 2,000년 동안 사람이 먹는 양은 늘지 않았다. 늘어난 것은 사람 몸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일의 양이다.

두 방향. 문명은 이 토대 위에서 두 방향으로 나아가며, 방향마다 종착점이 있다. 방향 1은 물질을 원하는 대로 배치하는 비용을 0으로 몰아간다. 운송, 제조, 건설, 농업, 우주 개척이 모두 이 방향의 한 형태다. 방향 2는 행동에 옮길 수 있을 만큼 정확하게 예측하는 비용을 0으로 몰아간다. 통신, 계산, 과학, 교육, AI가 모두 이쪽에 속한다. 두 방향 모두 의도를 결과로 바꾸는 비용을 낮춘다. 하나는 물리 세계를 움직여서, 다른 하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내서 그렇게 한다.

두 방향은 같은 문제를 두고 경쟁하며, 더 적은 비용으로 수렴하는 쪽이 이긴다. 어느 쪽이 이길지는 미리 읽어 낼 수 있을 때가 많다. 문제를 단계별로 쪼갠 뒤 단계마다 움직여야 하는 질량을 세어 보면 된다. 쇼핑에서 검색, 비교, 주문, 결제는 질량을 전혀 옮기지 않는다. 질량이 움직이는 것은 창고에서 현관까지 가는 마지막 구간뿐이다. 사람들이 한때 상상하던 쇼핑 로봇을 Amazon이 이긴 것도 그 해법이 옮기는 질량이 더 적었기 때문이다.

균형이 깨진 이유. 지난 30년 동안 자본과 인재는 거의 전부 방향 2로 흘러갔다. 소프트웨어는 거의 공짜로 복제되고, 별 마찰 없이 돌아가며, 에너지도 많이 먹지 않는다. 이 세 성질 가운데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마지막 하나뿐이고, 제약이 있는 세계에서 자본은 제약이 가장 느슨한 곳으로 간다.

그러다 2020년대에 방향 2가 에너지라는 벽에 부딪혔고, 효율을 높여도 벽은 물러나지 않았다. 수렴 비용이 떨어지면 한 번도 수지가 맞은 적 없던 용도가 수지를 맞추게 되고, 수요는 효율로 아낀 몫보다 더 크게 늘어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추정에 따르면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2025년에 17% 늘었고, 2030년이면 대략 두 배가 될 전망이다. AI 전용으로 지은 시설만 보면 1년 사이 50%가 늘었다. 같은 기간 AI 작업 하나에 드는 전력은 빠르게 줄었지만, 아낀 전력은 곧바로 더 많은 계산으로 바뀌어 더 넓은 곳에서, 더 자주, 더 무거운 일에 쓰였다.

자본은 이미 어떤 전망보다 분명한 목소리로 이 사실을 말하고 있다. 2025년 8월 규제 당국은 미시간주의 팰리세이즈 원전을 폐로 절차에서 되돌려 운영 허가 상태로 복귀시켰다. 이런 재가동은 처음이었다. 컴퓨팅 수요가 에너지 공급 투자를 정치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일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피지컬 AI와 에너지로 흘러드는 돈을 귀환으로 읽는다. 30년 전 방향 1을 떠났던 자본이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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