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04

풍요의 연쇄

로밍 데이터 2GB로 해외에서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면 누구나 아껴 쓰게 된다. 어떤 것이 유한한지 무제한인지는 실제로 얼마나 모자란지와 견줄 수 없을 만큼 크게 사람의 마음을 좌우한다. 같은 여행자에게 무제한 요금제를 쥐여 주면 휴대전화는 쉴 틈이 없다. 아침부터 밤까지 명소를 돌아다니며 음성 비서를 내내 켜 둔다.

자본을 어디에 둘지는 제약 안에서 정해진다. 사업 하나가 세워지면 그 덕에 다른 사업이 가능해지고, 에너지가 모자라 시작조차 못 한 사업은 거기서 뻗어 나왔을 다른 사업까지 모두 데리고 사라진다. 제약 안에 머무는 한, 제약이 없다면 무엇을 할지 제대로 그려 보기 어렵다.

에너지에 관한 한 우리 문명은 2GB를 손에 쥔 그 여행자다.

3세기에 걸친 증거. 에너지 비용이 무너지면 기존 수요를 채우는 비용이 싸지고, 수요 자체도 몇 배로 불어난다.

인류가 비용을 끌어내려 온 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 이어진 것은 인공조명이다. 윌리엄 노드하우스의 측정에 따르면 1,000루멘시의 실질 가격은 1800년에서 1992년 사이에 99.97% 떨어졌다. 약 3,000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Figure 5-1 Three centuries of light: the purest case of the cascade

The price of light fell by a factor of three thousand10⁻³10⁻²10⁻¹10⁰10¹18001850190019502000Price per 1,000 lumen-hours, 2018 USD (log)a fall of 99.97%$7.86$0.0023The share of income spent on it stayed in the same band0.00.20.40.60.81.01.21.4Spending on light, % of GDP1.300.39best fit 0.72%, in a band of 0.39 to 1.30the saving was never taken;it was spent on more lightUnited Kingdom1700World, off grid1999World, on grid2005
Price of 1,000 lumen-hours, 2018 USD
YearPrice
1800$7.86
1850$1.8
1900$0.2
1950$0.02
1992$0.0023
Spending on light, % of GDP
SettingShare of GDP
United Kingdom, 17000.72 (best fit)
World, off grid, 19990.72 (best fit)
World, on grid, 20050.72 (best fit)
Range, 17 observations0.39 – 1.30

The three points on the right are the empirical settings the paper reports, three centuries apart, from tallow candles to grid electricity. The shaded band is the paper's range of 0.39 to 1.30 percent of GDP across seventeen observations; the line through it is its best fit of 0.72, not a value measured three times over.

Source: Left: Nordhaus (1996), in The Economics of New Goods. Right: Tsao et al. (2010), J. Phys. D 43(35), 354001.

조명의 3세기. 실질 가격은 약 3,000분의 1로 떨어졌는데도 소득 가운데 조명에 쓴 몫은 내내 같은 범위에 머물렀다. 관측치 17개에서 GDP의 0.39~1.30%였고, 가장 잘 맞는 값은 0.72%다.

그렇다면 빛이 3,000배 싸졌을 때 사람들은 조명에 돈을 덜 썼을까? 3세기 동안 6개 대륙에서 서로 다른 조명 기술 다섯 가지를 거치는 사이, 소득에서 조명이 차지하는 몫은 같은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아낀 돈은 누구의 주머니에도 남지 않고 고스란히 더 많은 빛을 사는 데 들어갔다. 밤새 불을 밝힌 거리, 24시간 돌아가는 공장, 방마다 놓인 등불이 그렇게 생겨났다. 이 메커니즘에는 조명에만 해당하는 구석이 전혀 없다. 게다가 조명은 에너지의 여러 쓰임새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가격 뒤에서 기다리는 것들. 다음에 무엇이 풀려날지는 비용 구조를 보면 읽힌다.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는 비용의 4분의 1에서 5분의 2가 에너지다. 전력이 싸지면 건조한 지역에서 담수는 결정적 제약의 목록에서 빠진다. 수직 농장 운영비의 40~70%도 에너지이니, 값싼 전력은 농업을 땅과 기후의 굴레에서 풀어 준다. 발사 비용은 이미 20분의 1로 떨어졌다. 우주왕복선 시절 킬로그램당 약 54,500달러이던 것이 Falcon 9에서는 약 2,720달러가 되었다. 여기서 다시 100분의 1로 낮추면 지구 궤도는 공장을 세우는 곳이 된다.

연쇄는 가정으로 되돌아온다. 앞 글에서 아이를 기르는 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끌어올린 재화는 하나같이 자동화가 닿지 않은 재화였고, 자동화가 닿지 못한 까닭 역시 에너지와 기계의 부족이었다. 보몰의 비용병을 고치는 방법은 지금까지 하나밖에 없었다. 병든 부문의 생산성을 기술로 직접 끌어올리는 것이다. 값싼 전력과 몸 쓰는 일을 해낼 기계가 주택과 학교, 보육, 병원에 닿으면 가격 체계에서 오르기만 하던 유일한 영역이 내려가기 시작하고, 앞 글에서 말한 아이를 둘러싼 가격의 덫도 느슨해진다. 결국 값싼 에너지는 두 가지 일을 한다. 이미 있는 것에 대한 수요를 몇 배로 불리고, 애초에 무언가를 원하고 살 사람을 다시 불러온다.

공급의 순서와 그 시계. 종착점은 핵융합이다. 다만 핵융합 비용이 10분의 1로 떨어지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과 수백 기의 원자로가 필요하다. 전환기를 떠받치는 것은 기존 방식의 대형 원자로, 그리고 공장에서 연속 생산하는 소형모듈원자로(SMR)다. 화석연료가 다리 역할을 하고, 재생에너지는 안정 전원 위에 얹힌다. 이 전원들은 2020년대 말부터 2030년대에 걸쳐 계통에 전기를 보내기 시작한다. 가격이 실제로 움직이는 시기는 2040년대다.

가격은 과학의 돌파구로 정해지지 않는다. 얼마나 많이 지었느냐가 가격을 정한다. 누적 생산량이 두 배가 될 때마다 단위 비용은 일정한 비율로 떨어진다. 태양광 모듈 가격은 누적 생산량이 두 배가 될 때마다 20~25%씩 내려갔고, 2010년대에만 80% 넘게 떨어졌다. SMR이 실제로 노리는 것은 원자로를 현장에서 짓는 토목 공사에서 생산 라인을 타고 나오는 제품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원자력은 건설의 학습곡선을 벗어나 제조의 학습곡선에 올라탄다.

수요 쪽은 더 느리다. 제약이 풀리면 공급은 몇 년 단위로 늘지만 수요는 세대 단위로 는다. 나는 이 둘 사이에 벌어지는 틈을 수요의 골짜기라고 부른다.

경제가 돌아가려면 적어도 네 가지 머릿수가 있어야 한다. 노동자, 고객,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 납세자다.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첫째뿐이다. 물건을 팔 상대가 없는 공장은 자산 노릇을 못 하고 빚으로 남는다.

게다가 넷은 함께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은 태어난 날부터 고객이다. 벌어들이는 소득이 자기 소비를 넘어서는 것은 서른 살 무렵이 되어서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의 창업자는 평균 40대 중반이고, 창업의 성공 확률은 예순 가까이까지 계속 올라간다.

2035년에 제약이 완전히 풀리고, 부유한 나라의 출산율이 바로 그해 대체출산율 수준으로 뛰어올라 그대로 유지된다고 해 보자.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그렇지만 이보다 빠른 일도 일어날 수 없으니, 이 가정에서 생기는 골짜기가 가장 얕은 골짜기다. 그래도 골짜기는 반세기 동안 이어진다.

그 반세기 동안 믿고 기댈 수 있는 수익은 머릿수에 좌우되지 않는 수익이다. 자동화 자본 자체의 지분, 그리고 에너지와 컴퓨팅 인프라가 여기에 해당한다. 고객이 모자란 세상에서는 살 돈이 있는 쪽이 힘을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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